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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택은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마른 라 발레 국립건축학교에서 석사학위 및 프랑스 공인건축사를 받았다. 이후 실무를 병행하며 스위스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자크 뤼캉 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 뉴욕대학교 인스티튜트 오브 파인아트의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건축을 중심으로 오브제 디자인에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스케일의 구분 없이 삶을 담는 인위적 공간 환경과 연관된 구성, 구축, 변형 등 총체적 이론 연구와 건축설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오늘의 건축을 규명하다』(2019)를 번역한 바 있다.
Nam Sungtaeg is a professor at Hanyang University. He holds a Bachelors of Architecture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Diplome of Master and Architecte DPLG from École d’architecture de la ville & des territoires Paris-Est in Paris Marne la-Vallée, France and Ph.D. in École Polytechnique Fédérale de Lausanne (EPFL) in Switzerland. In 2019, he conducted research as a visiting scholar at The Institute of Fine Arts, New York University. His major focus is on architecture without any distinction in scale, ranging from object design to urbanism. He is interested in design research concerning theories such as composition, construction, and transformations that are related to the built environments for human life. He translated Précisions sur un état présent de I’architecture (2019).
“나는 바닷가에 떠밀려온 것들 중 하나를 발견했다네. 가장 순수한 [흰색의] 것인데, 광택이 나고 단단하고 부드러우며 빛이 났지. (…) 과연 누가 널 만든 것일까?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네. 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나 전혀 형태가 없는 것은 아니야. 너는 자연의 유희인가? 이름없는 존재여. 이 밤바다가 내뱉은 오물 가운데 신들이 내게 데려온 것인가?”▼1
폴 발레리의 1921년 저서 『Eupalinos ou l’Architecte(에우팔리노스 혹은 건축가)』에서 묘사된 대상은 아마 백사장 조약돌이나 소라 껍질 같은 평범하고 작은 무언가였을 것이다.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것을 관찰하기 시작하며 낯선 사건이 발생한다.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눈’ 앞에 하찮았던 사물이 아름다운 신의 창조물로 변모한다. 건축가 정의엽이 이야기하는 경험담도 100여 년 전 발레리의 표현과 닮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한창일 때 가파도를 산책하던 그는 ‘어떤 의도적 가공이 없는 바위’를 발견했다. “우연의 산물인 이 ‘날것’을 잘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구축물로 보였다.”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에 침식, 풍화되며 계속 변형 중인 형태가 정의엽의 눈에 결국 ‘의도된’ 구축물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도 한림 바닷가 갯바위 인근에 위치한 그의 멜팅하우스는, 발레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닷가에 떠밀려온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한 모습이다. 건축은 자연적 바위 형상의 의도적 재현임을 숨기지 않는다. 19세기 요한 요아힘 빙켈만이 고대 그리스 예술을 이상적 모델로 내세우며 그것의 모방만이 유일한 예술이라 믿었던 것처럼, 자연의 바위가 정의엽에게 하나의 건축적 모델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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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 트루베
자연 오브제에 대한 예술적 관심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위 화가들은 화실 바깥의 산업 현상과 그 산물인 기능 오브제들을 발견했으며 레디메이드와 콜라주 예술을 통해 이를 표현했다. 근대 버내큘러인 산업은 새로운 고전처럼 예술 모델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다만 예술가의 호기심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제3세계 원시예술을 거쳐 문명이 닿지 않던 자연에게로 관심을 확장했다. 아르카디아나 무릉도원 같은 이상화된 상상 속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경계에 인접한 일상적 자연이 그 대상이었다. 가까운 도시 외곽의 자연에서 발견된 오브제들이 그러한 것들이었다. 페르낭 레제를 예로 들자. 도시와 산업에 관심을 가졌던 화가의 그림들이 점차 자연 오브제들로 옮겨갔다. 1928년부터 1934년까지의 스케치들(『La poésie de l’objet(오브제의 시)』)은 나무 줄기와 뿌리 조각, 부싯돌, 호두 껍질, 뼈 조각 등의 비밀에 집착하는 세밀한 해부도와 같았다. 산업 오브제를 예술화한 레디메이드조차 자연 오브제로 범위를 확장할 때도 있었다. 이와 같이 자연 오브제를 발견하는 경우까지 포괄하면서 예술에서 ‘오브제 트루베(objet trouvé)’라는 명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경우를 살펴보자. 1918년 이후 순수주의 시기에 정물화의 요소들이 산업 생산품처럼 단순 기하학과 표준 형태를 지닌 ‘유형-오브제(objet-type)’였다면, 1928년경부터는 친구 레제처럼 자갈, 솔방울, 해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