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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삶이 교차하는 자리, 리노베이션을 앞둔 미술관 The Intersection of Art and Life at an Upcoming Art Museum Renovation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1986년 과천으로 신축 이전됐고, 그 전후로 아르코 미술관(전 미술회관, 1979), 환기미술관(1992), 부산시립미술관(1998), 아트선재센터(1998) 등이 완공되며 미술관이 양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30~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오래된 미술관들은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리노베이션에 직면했다. 개보수의 필요에 더해 미술관에 요구되는 역할과 공간 또한 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오래된 미술관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번 리포트에서는 리노베이션을 맞이한 국내 미술관들의 움직임과 함께, 우리의 참조점이 될 만한 서구의 사례를 살펴본다.

Alongside the building and relocation to Gwacheon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 Korea’s first contemporary art museum – in 1986, the Korean art museum scene boomed with the opening of the Arko Art Center (formerly Misulhoegwan, 1979), Whanki Museum (1992), Busan Museum of Art (1998), and Art Sonje Center (1998). These buildings are now three or four decades-old and need to be renovated. What should be the directive for the renovations of these old art museums regarding today’s changing demands in terms of their roles and spaces with basic repair? In this report, we review how art museums in Korea have approached the need for renovation and study some examples from the western world as potential reference points.

국내의 오래된 미술관, 관람객을 향해 열리다

미술관 건축의 변화

25년의 간격을 두고 신축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하 과천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하 서울관)의 설계 배경은 각 시대가 요청한 미술관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과천관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시기와 맞물려 완공됐다. 청계천 자락에 위치하고 운영 주체가 전혀 다른 서울대공원 부지를 통과해야 하는 등 접근성이 취약한 대지에 과천관이 자리 잡은 이유는 신축 당시 무엇보다 ‘세계적 규모’를 우선했기 때문이다. 부산시립미술관 또한 한국의 정치사회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된 작업으로, 과천관 개관과 1988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국가 주도에서 지자체 주도로 문화 부흥의 단위가 변화해나가는 와중에 건립됐다. 2013년에는 서울관이 완공(「SPACE(공간)」 551호 참고)됐는데 설계공모 심사 당시 민현준(홍익대학교 교수)의 발언을 살펴보면, 미술관의 역할이 모뉴멘트에서도, 또 미술품을 담는 화이트 큐브에서도 더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민현준은 지난 시대의 미술관 이데올로기가 ‘화이트 큐브’라면 미래의 이데올로기는 ‘장소특정성’이라고 말했는데,▼1 그 장소에서만 성립하는 체험을 제공한다는 의미인 장소특정성은 이소자키 아라타가 1991년경에 언급한 ‘3세대 미술관’ 개념과 연결된다. 이에 더해 민현준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하나의 이미지를 전 세계가 쉽게 공유하는 ‘스펙터클의 시대’에 미술관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니콜라 부리오의 주장과 같이 관객과 작가가 직접 조우하는 ‘작은 관계’들이 강조되어야”▼2 한다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엠피아트 시아플랜 컨소시엄의 서울관은 ‘공원 같은 건축, 풍경 같은 미술관’을 표방하며 전시 관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편안하게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고려됐고, 선형 동선이 아닌, 관람객이 직접 전시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꾸려졌다. 관람객 친화적인 미술관으로 변화하는 흐름과 연관해 시각문화 연구자 윤원화는 “20세기 후반에 미술관의 양적 팽창과 질적 변화가 병행되면서 미술관 건축은 (…) 대중적 관광 명소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3 고 언급했고, 사회학자 카트린 발레는 ‘미술관의 종합문화공간화’라고 표현했다. 더 나아간 논의로 비평가 클레어 비숍은 “스마트폰 촬영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진 및 동영상의 공유가 확산되면서, 미술관에서의 작품이 춤과 같은 이벤트적 장르로 변화”한 것에 주목했고, “이러한 작품은 기존의 공연과 달리 미술관 구석구석에서 장시간 가동되고 관람객은 지나치듯 산만하게 관람”▼4한다고 말했다. 이는 카페 건축처럼 미술관 건축 또한 관람 경험을 넘어 소셜 미디어상에서 어떻게 보이고 공유되는지가 중점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앞서 윤원화가 언급한 미술관의 ‘질적 변화’는 각 미술관이 마주한 상황에 대응하며 진행됐다. 일례로, 1997년 과천관은 조각 전시장으로 쓰이던 원형전시실 2층을 어린이 미술관으로 변모시켰는데 이는 당시 미술관이 수행하던 수집, 보존이라는 일차적 기능에서 벗어나 대중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1998년 아트선재센터는 영화제 외에는 영화 기획 프로그램을 선보일 자리가 없었던 때 지하를 영화관으로 계획하며 개관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서울시립미술관은 적극적으로 분관 체제를 도입해 대안 공간 성격의 SeMA 벙커(2017), 백남준 기념관(2017) 등을 조성해 문화예술 시설이 빈약한 각 지역에 문화예술의 거점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2023), 서리풀 개방형 수장고(건립 예정)를 계획하며 소장품 증가에 따른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아카이브를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선보였다.

대중성, 공공성, 효율성 등 미술관의 역할과 공간이 밀접하게 연관되며 변화한 가운데, 전시 형식과 공간 간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미미했다. 이러한 담론이 외국과 비교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은 점에 대해 임근혜(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2팀장)는 “국립현대미술관이 1969년, 서울시립미술관이 1988년에 개관했지만 학예실이 설치된 것은 각각 1986년과 2002년 전후이므로 (…) 실제 큐레이터십의 역사는 오랜 기간 전문가 없이 행정직이 기관장과 직원의 역할까지 담당”▼5했기 때문이라 해석하기도 했다.

리노베이션을 앞둔 미술관의 움직임

리노베이션을 앞둔 우리나라의 미술관들은 미술관 공간을 주제로 삼은 전시를 다수 열면서 오래된 미술관과 현재를 연결 짓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먼저, 과천관과 아트선재센터는 기존 공간에 파빌리온과 같은 건축적 개입으로 공간 다시보기를 시도했다. 과천관에서는 <MMCA 과천프로젝트>(2021~),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2023)을 열었다. 일련의 전시 속에서 다이아거날 써츠(대표 김사라)는 과천관 진입을 위한 주요 거점인 버스 정류장에, 조호건축사사무소(대표 이정훈)는 로툰다와 연결되는 옥상정원에 파빌리온을 설치해 과천관 방문 및 관람 경험의 폭을 넓혔고,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대표 김현종)의 작업은 당대 벽식구조로 된 건축과 달리 깊은 공간과 다수의 기둥으로 설계된 과천관의 건축적 특성을 드러냈다. 아트선재센터의 <아트선재 공간 프로젝트 #1~#4>(2014~2016)는 최춘웅(서울대학교 교수), 마르쿠스 미이센(마르쿠스 미이센 대표), 작가 준양 등이 참가해 각각 1층 라운지 공간, 미술관 정문 앞, 미술관의 별관처럼 사용하던 한옥 건물을 작업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미술관 내 ‘공적 공간’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였다.

공간에 대한 건축적 개입은 없었지만 미술관 공간을 주제로 다룬 전시도 다수 있었다. 아르코미술관은 <Unclosed Bricks: 기억의 틈>(2018)과 <기억, 공간>(2023)을 통해 장소성에 대한 맥락을 만들어나갔다. 아르코미술관이 위치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이 세워졌고, 이후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과대학, 법과대학이 들어서면서 근대적 건축물로 도시경관이 형성됐다. <Unclosed Bricks: 기억의 틈>은 경성제국대학을 시작으로 그 주변의 건물들이 모두 벽돌로 지어진 점에 주목했으며, <기억, 공간>은 긴 역사를 가진 아르코미술관에 얽힌 기억을 작가들의 눈을 통해 조명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또한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연 <시공 시나리오>(202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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