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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적 구성과 공동의 열망 Reactionary Configuration and Collective Aspiration

수직 적층, 최대 전용 면적과 용적의 확보, 빤빤한 볼륨, 외계와의 접속이 차단된 깊숙한 내부, 기계적으로 반복한 경직된 배치. 이는 생산과 공급의 메커니즘, 그리고 상명하달식 전체주의 속에서 불문율처럼 굳어져버린 것들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유현준(홍익대학교 교수)의 네 작업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낮은 덩어리로 분절하여 흩뿌리고, 지면에 바싹 붙이고, 얇은 띠로 잘라 뱀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지그재그로 벌려서 여기저기 옥외 공간을 끌어들이고, 중간을 건너뛰어 이곳과 저곳을 잇는 시선의 관통이 이루어지고, 바닥, 처마, 슬라이딩 도어, 발코니, 테라스의 앙상블을 통해 가장자리는 비정한 경계면이 아니라 또 하나의 정박지가 된다. 생산의 논리가 지배하는 건축과 도시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반동적인 구성이 네 프로젝트 모두에 적용되고 있다. 그리드스케이프(2023)는 요철 형태의 평면을 고안해 외기와의 접속을 강화하고 발코니를 빙 둘러 그림자가 진 두터운 가장자리를 만들어낸다. 아페르 한강(2024)에서는 테라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내외부를 넘나드는 유목적 삶과 이웃간 절제된 시선의 교차를 유도한다. 하지만 반동적 구성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호미(2023)와 스머프 마을학교(2021)다. 전자는 구성, 지역성, 초지역성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후자는 비정형적인 기하학과 삶의 다양성 사이의 관계를 묻게 한다.

구성, 지역성, 초지역성

호미는 막힘없는 흐름을 담아내는 내밀한 파빌리온이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주거라기보다는 이상적인 공간구성의 실험장이다. 응집된 입방체가 아니다. 연속된 얇은 띠로 잘게 나누어 최대한 길게 늘어뜨려 놓았다. 성곽처럼 둘러쳐진 담장과 지그재그로 늘어뜨린 본채 사이에 다양한 위치, 향, 비례를 갖는 옥외 공간이 만들어진다. 진입로는 길게 늘어뜨렸다. 내부로 진입하면 다시 기다랗게 늘어뜨려진 순로가 나타난다. 코너가 뚫린, 그리고 시선이 가는 곳마다 막힘이 없는 자유 유영의 공간이다.

이곳은 미로인 것 같지만 질서가 있다. 한가운데에 수영장을 박아놓았다. 중심과 주변이 서로 균형을 잡고 엮인 형국이다. 복잡한 구성에 질서감을 주는 것은 또 있다. 바닥과 지붕의 단정한 면이다. 아돌프 로스가 천장을 동일면으로 처리하고 바닥의 높이에 변화를 주었다면, 리처드 노이트라는 바닥면은 고정하고 천장의 높이에 변화를 주었다. 호미는 제3의 변종이다. 바닥과 지붕을 동시에 고정하되, 사이에 끼인 벽과 유리는 파격적으로 자유롭게 배치한다. 두 개의 수평면이 명증한 프레임을 형성하여, 변화무쌍한 벽체의 종류와 위치, 뚫리고 막힘, 직진과 꺾임의 변주가 혼돈스럽지 않도록 잡아준다. 특수 도장(스페셜 페인트)으로 처리한 미색 바닥, 천장, 그리고 벽체는 곳곳에 자리한 정원이 반사해주는 미묘한 기운의 변화를 받아낸다. 순수 감각의 캔버스라고나 할까?

막힘없는 흐름을 담아내는 길게 늘어뜨려진 내밀한 파빌리온. 사실 ‘흐름’을 위한 공간 실험은 낯선 것이 아니다. 데 스테일(De Stijl)에서 미스 반 데어 로에를 거쳐 렘 콜하스와 벤 판 베르켈에 이르기까지, 막힘없는 ‘흐름’을 이상으로 앙모하던 아방가르드의 계보는 길다. 호미는 또 하나의 변주일까? 이렇게 계보를 만들어보려는 노력 자체는 유효한 것일까? 흐름이 지향하는 목표는 상실한 채 고독한 중성적 개인이 홀로 공간을 유영하며 탐미하는 공간 미학을 내밀었던 역사의 반복으로 귀착되는 것은 아닐까? 흐름은 허공을 향해 무한히 전진하는 조작된 주체의 순수 운동이 아니다. 폴 세잔이 정적인 투시도 기법을 깨고 흐름이 응고된 화면을 잡아낸 것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이 자신에게 드러나기를 바라던 거만한 투시도의 절대주체를 비판한 것이다. 다양한 각도, 높이, 위치에서 본 테이블, 배, 사과, 항아리, 주전자는 다가가서 하나하나에 맞추어 가슴을 틀고, 고개를 돌리고, 눈길을 주고, 손으로 감아쥐는 흐름을 포착한 결과다. 소통과 연대를 위한 위치 변화의 궤적을 담고 있다. 이를 망각하고 흐름 자체에 탐닉하는 구성은 멜랑꼴리하고 공허하고 유희적이며 사변적이다.

호미의 길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론 더 세련된 흐름의 공간 미학을 구현하는 길을 걸어간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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