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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41권
메모라이즈 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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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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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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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라이즈 41권 - 로 유진

    1. If You Change, One (7)

    크으으윽!

    황급히 단상으로 돌아가던 에르윈은 달려든 마족들이 모조리 떨어져 나가거나 단상 아래로 추락하자 괴성에 가까운 신음을 흘렸다. 두 번의 살해 시도가 모조리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상대와 단상의 거리는 이백 미터, 아니 일백 미터 안쪽으로 줄어들었다.

    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결국 이제는 이판사판 공사판이었다.

    전군……!

    이를 갈던 에르윈이 무어라 외치자마자 전장으로 나갔던 마족들이 일제히 등을 돌렸다. 놀랍게도 전원이 전장을 포기하고 김수현 하나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날개가 있는 마족들의 이동 속도는 인간보다 몇 배는 빠르다. 그런 만큼 후방에 있던 마족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목적지 인근으로 도착해, 일부는 땅으로 나머지는 단상으로 한꺼번에 쇄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에르윈은 알고 있었을까. 전장을 버리고 단상으로 모이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최악의 한 수였음을. 하기야 수나가 출현한 후 승산은 없어졌고, 또 그만큼 상황이 급하기도 했다. 발 빠르게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고 김수현 하나에 집중한다는 선택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주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하다못해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봤다면.

    그랬다면 그와 같은 명령은 내리지 않았을 텐데.

    왜냐면.

    뭐, 뭐야. 저것들은 또?

    한 박자 늦게 따라붙은 수나가 눈이 벌게진 채 공중으로 무섭게 날아오는 중이었으니.

    안 그래도 곧 아빠를 본다는, 아니 구한다는 생각에 몸이 달아오르다 못해 폭발 직전이었다. 한데 갑자기 웬 하루살이 같은 것들이 전방을 빽빽하게 물들이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이이이익!

    끝내 사랑스럽게도 분노를 터뜨리며 팔을 앞으로 뻗는다. 이윽고 조그마한 손바닥이 단상에 있는 김수현을 정확하게 향한다.

    수나가 다루는 힘의 정체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딱 하나 특징지을 수 있는 건 있다.

    그건 바로 어떤 소리도 소음도 나지 않는다는 것.

    말인즉.

    수나의 의지가 발동하는 동시에 전방의 일대가 온통 붉은빛으로 번쩍거렸다.

    이어져 발생하는 현상은 아까와 하등 차이가 없었다.

    거두절미할 것도 없다. 단지 수나가 손을 뻗자마자 수백의 마족들이 일제히 녹아내렸다. 정확히는 붉은빛이 언뜻 스칠 때 순간적으로 소멸했다는 표현이 옳을 터. 어떤 조짐이나 징조는커녕 수나의 의지가 발현하는 즉시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작은 소리라도, 아니 하다못해 일말의 마력 흐름이라도 느꼈다면 어떻게 알아차리기라도 했을 터. 한데 손 한 번 뻗었다고 하루살이 떼처럼 모인 마족들의 중심에 큼지막한 구멍이 뻥 뚫렸다. 그러니 어찌 공포를 느끼지 않고 배길 수 있으랴.

    물론 병력은 아직 수천이나 남았다. 또한 조물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은 마족들이 두려움을 이기고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쁘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물량도 소용없다고 해야 하나. 구천(九天)격 신인 겁화와 화정의 합일로 탄생한 수나는 진정으로 어마어마한 무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수천의 마족 군단 중 일백 명, 아니 단 열 명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다면 어떻게든 명령을 따를 수 있을 텐데. 허나 손짓하는 족족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리고, 모이기 무섭게 소멸해 버리니 허공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풍경을 연출하는 중이다.

    이와 반대로 단상에 거의 근접한 북 대륙 무리의 상황이 한층 나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김수현의 처형을 코앞에서 올려다볼 뻔했는데, 수나의 활약으로 일말의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급박함 속에서도 상황을 살필 시간을 얻을 수 있었으니.

    샛노란 빛으로 물든 김유현의 눈동자에 순간 이채가 스쳤다.

    ‘단상 아래로 떨어진 놈이 다섯. 아직 남아있는 놈은 열둘.’

    좀 전 백한결의 보호막으로 처형을 막아내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쪼롱이로 내려다보는 시야로 아까 떨어져 나갔던 놈 중 여럿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잡혔다. 그러자마자 김유현의 두 눈동자가 형형한 안광을 뿜었다.

    우르르릉!

    이윽고 하늘에서 정확히 열두 줄기의 벼락이 내리꽂히는 찰나.

    쿠르르르!

    돌연 땅에서도 뇌전과 똑같은 숫자의 불길이 동시에 솟구쳤다. 불길한 기운을 뿌리는 시커먼 불기둥은 흡사 피뢰침이라도 된 듯 뇌신의 벼락을 모조리 상쇄해 버렸다.

    에르윈! 네가 김수현을 죽여라!

    이어지는 외침에 김유현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흘끗 눈을 드니 날개를 활짝 펼친 어둑한 그림자가 빠르게 강하하고 있었다. 한 번 본 기억이 있는 형상이었다.

    아스타로트!

    치 떨리는 목소리가 새나왔다. 시꺼멓게 이글거리는 양손을 보니 당장에라도 불을 뿜을 듯한 폼이다. 저 하나라면 현 인원으로 지지는 않겠지만, 마냥 쉽게 이길 수도 없는 상대였다. 아스타로트도 그걸 알고 아까처럼 외쳤을 터. 즉, 최대한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었다.

    물론 김유현도 순순히 끌려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만큼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발걸음이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갑작스레 멈췄다. 빠르게 하강하는 아스타로트를 노려보며 두 손이 찬란한 뇌광을 방출한다. 공교롭게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신재룡, 차소림의 걸음도 동시에 멎는다.

    왜 멈췄는지는.

    부탁합니다!

    이 한마디에 전부 들어있었다.

    제발……!

    간절한 외침이 메아리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어쩔 줄 몰라 하던 나머지 이들은 이내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비록 자세한 말은 오고 가지 않았으나 김유현과 나머지 두 명이 왜 멈춰 섰는지 본능으로 이해했으니까.

    아스타로트의 포효와 전류가 사납게 방전하는 소음이 등 뒤로 빠르게 멀어진다. 김유현이 빠진 자리에는 두 사용자가 동시에 선두로 올라왔다. 죽어라 달리는 두 남녀는 바로 안현과 이유정이었다.

    하지만 아스타로트를 뚫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공중은 수나에 의해 차곡차곡 정리되고 있다손 쳐도, 애초 구출조를 가로막으려는 놈들도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내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왼쪽에서 이유정을 노리는 기운이 폭풍처럼 치고 들어왔다. 워낙 신속한 속도라 무조건 달리는 것에 주력하던 이유정이 놀라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었다.

    그때.

    퍽!

    돌연 어깨에 강한 충격을 받은 이유정이 크게 비틀거렸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순간 시린 냉기가 뺨을 스쳤다. 화들짝 치떠진 눈이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남다은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이유정의 입이 벌어졌다.

    언니!

    어서 가……. 아악!

    그 순간 남다은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바로 이어서 시커먼 기운을 풀풀 날리는 엘도라가 악귀와 같이 일그러진 얼굴로 무섭게 들어오는 찰나였다.

    까앙!

    부지불식간에 또 한 번 세찬 쇳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진한 보랏빛 코트 자락이 펄럭거렸다. 긴 장검을 든 사내는 땅에 기다란 자국을 남기며 밀려났으나 엘도라의 돌진을 저지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그 상태로 허준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손을 뻗어 상대의 등을 세게 밀쳤다. 주춤 밀려난 이유정의 얼굴이 멍해졌다.

    어, 어…….

    언니! 그냥 가요!

    이 악물고 충격을 견디느라 허준영이 하지 못한 말을 김한별이 대신 해줬다.

    이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성난 검음과 보석을 무작위로 뿌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이유정 역시 뒤돌아보지 않고 다시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 세 명이 빠졌다.

    이제 남은 인원은 고작 일고여덟 남짓. 근원, 안현, 안솔, 이유정, 진수현, 제갈해솔, 차희영. 그리고 언제 따라왔는지 모를 유니콘 한 마리.

    단상 주변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운 소란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일직선으로 주파하는 구출조의 분위기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마지 억지로 감정을 절제하는 듯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들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조건 그래야 하는 것처럼.

    …단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고 있을 뿐.

    잠시 후.

    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원은 비로소 단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던 건물이 이제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단상 바로 앞까지 도착했을 뿐, 올라가려면 좌우로 난 계단까지 가야만 했다.

    그때 제갈해솔이 빠르게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에서 물보라 같은 기운이 일어나자 망연하던 안현과 이유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갈해솔의 장기를 떠올린 것이다. 워프 능력을 사용하면 굳이 계단까지 갈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한 찰나 차희영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다면 진작 사용하면 됐을 텐데, 왜 이제껏 아끼고 있었던 걸까? 또 왜 영창하는 와중 초조한 눈으로 계속 주변을 둘러보는 거고?

    해답은 곧 알 수 있었다.

    주문이 거의 완성되기 직전에 갑자기 날카로운 줄기들이 화살처럼 쇄도해 왔기 때문이다.

    아이 씨!

    인상을 쓴 제갈해솔은 주문을 취소하고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그거… 기다리고 있었어. 언제 쓰는지.

    곧 요염한 목소리를 내며 등장한 여인은 바로 리리스였다.

    제갈해솔의 워프 능력은 저번 전쟁 때 한 번 밝혀진 바 있다. 적들의 눈앞에서 워프로 안솔을 구출하지 않았는가. 말인즉, 악마도 그녀의 능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에이 씨! 알고 있었는데!

    그런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기척을 숨겼지.

    차갑게 말한 리리스는 우아하게 두 손을 펼쳤다. 열 손가락이 점차 길어지더니 송곳처럼 뾰족해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아아아…….

    긴 한숨을 뱉은 제갈해솔이 고개를 꺼트렸다.

    아쉽네. 구해주고 유세 좀 떨어보고 싶었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곧장 턱을 젖힌다.

    근원, 차희영. 도와줘. 혼자서는 힘들 것 같으니까.

    그 순간 곧바로 발 빠르게 뛰는 소리가 이어졌다. 안현과 진수현이 좌측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고 바로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러자 어정거리고 있던 안솔과 유니콘도 금세 둘을 뒤따라간다.

    놀고 있네. 누가 놓칠 줄 알고?

    가소롭다는 듯이 빈정거린 리리스가 팔을 뻗었으나.

    에베베베? 놓치게 할 건데?

    거대한 마력 파동이 리리스가 방출한 검은 줄기를 받아쳤다. 리리스의 눈이 화등잔만 해지더니 입에서 큭 소리가 샜다. 나름 여유라고 여겼건만 생각보다 상대의 마력이 만만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갈해솔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주문을 외면서 살랑살랑 손만 흔들었다. 괜찮으니 어서 가라는 뜻. 이내 근원도 조용히 마법진을 소환하기 시작하고, 차희영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황급히 부채를 꺼낸다.

    결국.

    ……!

    남아있던 이유정조차 등을 돌렸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나마 움직이기 시작한다.

    등 뒤는 여전히 소란스럽다. 신재룡의 거친 고함도 들렸고 칼과 칼이 부딪치는 시끄러운 철성도 들렸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둡고 뭉클뭉클한 마력과 제갈해솔의 방대한 마력까지 섞여 마구잡이로 느껴졌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이유정은 달렸다. 달리는 와중 두 눈이 돌연히 그렁그렁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까닭 모를 감정이 갑작스레 왈칵 솟구친 탓이다. 허나 아까 등을 떠밀던 감촉이 아직도 남아있어 꾹 참으며 전방을 응시했다.

    안현과 진수현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도 않는다. 이대로라면 구출을 하든 못하든 늦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하등 관계가 없다. 게헨나나 수나가 알아서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아니 남의 손에 맡길 거였다면 애초 이렇게 나서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만이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직접 구하겠다기보다는, 김수현의 구출을 위해 뭐라도 하겠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그런 만큼 자기를 믿고 남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팔자 좋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정이 살며시 단상을 흘겼다. 어지간한 도시의 성벽 규모와 맞먹는 정도의 단상은 여전히 드높기만 하다.

    …….

    할 수 있겠느냐는 갈등이 잠깐 스쳤으나 세차게 고개를 털었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해야만 했다.

    결심한 순간 이유정의 온몸이 황금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동체 강화와 묘족 체술의 동시 발동.

    성패는 일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결정 날 것이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곧바로 목적지까지 단숨에 다다를 수 있다.

    긴장으로 손을 말아 쥔다. 딱딱 부딪치는 이가 서로 강하게 맞물린다.

    당장 떠오르는 문제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었으나…….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 가늠하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으니.

    기합과 함께 있는 힘껏 땅을 박차자 황금의 형상이 허공을 훨훨 날았다.

    이어서 한 발이 단상에 살짝 닿는 순간.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놀랍게도 이유정의 전신이 폭발적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흡사 섬광의 움직임이 저럴까. 혼신의 힘을 다한 금빛 질주가 반듯하게 세워진 단상의 표면을 빛살처럼 가로지른다. 혜성의 꼬리 같은 잔상이 반듯한 수직으로 상승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아름답고도 용맹하다.

    스치는 풍경도 보이지 않고 귀를 스치는 바람도 느껴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점차 가까워져 오는 붉은 하늘뿐. 이것만 넘으면 그토록 바라던 김수현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끝자락까지 올라간 이유정이 한 번 더 발에 힘을 줬다. 힘차게 도약해 용수철처럼 튕겨 올라가자 시야가 단상 위로 훌쩍 넘어간다. 이어서 드디어 한 발을 걸치려는 순간이었다.

    텅!

    불현듯 전신이 무언가 단단한 것에 가로막히는 감각을 느꼈다.

    …아?

    이유정의 입에서 망연한 침음이 흘렀다. 멍한 두 눈이 거무스름한 빛이 흐르는 앞을 응시한다. 비로소 보게 된 안에는 김수현이 크게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

    오빠!

    급한 대로 손을 뻗었으나 애꿎은 장막만 치고 말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단상 전체가 정체 모를 검은 막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결계 안쪽에는 마족 수십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고, 그 속에 고연주가 섞여 있었다. 한 손으로 복부를 짚고 쓰러진 채로.

    그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늙은 노인 한 명. 이제 막 전투가 끝났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던 노인은 방금 올라온 이유정을 보자마자 귀찮다는 듯이 눈을 치떴다.

    …또 귀찮은 떨거지인가.

    나직이 중얼거리더니 힘겹게 지팡이를 들어 상대를 겨냥한다.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르지만… 잘 가시게.

    쾅, 작은 폭음과 함께 이유정의 몸이 세차게 기울었다. 미처 대응할 틈도 없었다. 하릴없이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에는 허무함이 여실히 드러나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느릿하게 흘러간다.

    ‘다… 갔었는데…….’

    딱 한 발자국이면 됐건만, 설마 단상에서까지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에는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는 동시에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런 이유정이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건 이제 막 계단으로 올라오는 서너 명이었다.

    후우우우…….

    실로 정신이 없었으나 멜리너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한 발만 늦었다면 저 그림자를 이용하는 이상한 인간이 김수현의 구출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헐레벌떡 단상으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마족 대부분이 쓰러진 후였으니까.

    또 방금 숫제 단상을 타고 올라온 여인도 그렇다. 뭔 상황이 이렇게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인지, 결계를 친 것도 정말이지 간발의 차였다.

    그래도 어쨌든 확보는 성공했으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린 멜리너스는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서며 눈을 돌렸다.

    꿇어앉아 있는 김수현은 어느새 머리를 푹 숙이고 있다. 옆의 여인이 담담히 한쪽 손을 잡아주고 있으나 사내는 미동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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