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 millions of ebooks, audiobooks, and so much more with a free trial

Only $11.99/month after trial. Cancel anytime.

마흔에 읽는 다니엘서
마흔에 읽는 다니엘서
마흔에 읽는 다니엘서
Ebook153 pages1 hour

마흔에 읽는 다니엘서

Rating: 0 out of 5 stars

()

Read preview

About this ebook

계산이 정확하신 하나님

 

다니엘서 1장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되받아 침략하거나 다른 나라에 침략 받은 억울함을 떠넘기려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도 않았다. 바보같이. 탄허 스님은 이런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일본은 지난 5백 년 동안 무려 49차례나 우리나라를 침략했다. 만약 임진왜란 때 천운이 우리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면 세력으로만 보자면 일본에 우리 땅을 열 번도 더 빼앗겼을 것이다. 결국 함경도까지 함락되면서도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국운 덕분이었다. 즉, 우리 선조들이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동양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며 남을 해칠 줄 모르고 살아온 것이 결국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동양 사상의 근본 원리인 인과법칙이자 인과응보이며 우주의 법칙이다. "

우리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당하고 보복하거나 악을 행하지 않았기에 당시에는 국운 덕분에 겨우 나라의 명맥을 지킬 정도의 운이었지만 이런 선이 쌓여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고 일본은 지은 죄가 많아서 가라앉을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긴 역사의 관점에서는 일견 이해가 간다.

이스라엘이 나라가 없어지고 심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지은 죄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큰 죄는 므낫세가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 성소를 더럽힌 죄였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 신을 섬겼다. 그 왕들의 죄가 너무 커서 여호야김이 왕이 되었을 때는 죄를 지은 후손의 한 사람인 왕이 어떻게 잘한다고 해서 판이 바뀔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호야김이 잘 한 것도 없지만.

그래서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넘기셨다고 한다. 여호야김은 왕이고 여호와의 전에서 사용하던 그릇 얼마는 여호야김와 비슷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의 그릇 얼마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갈 것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사람들과 나라의 죄를 정밀히 재어보시는지를 알 수 있다.

제3의 눈, 하나님이 역사를 보시듯이 내 삶을 보는 제3의 눈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견딜 수 없었을 것 같다. 양치기를 하던 다윗을 불러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엄마도 없이 구박과 정서적인 학대를 받으며 자란 나를 부르셔서 환경을 바꾸시고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런 환경을 열어주신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사람들이 가난, 가난 말을 많이 하지만, 나는 부모님과 살 때 정말 극도의 가난을 느꼈다. 아빠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불안정한 사람이었고 계모도 철딱서니가 없고 허영이 가득한데, 남편이 폭력적이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돈이 없으니 그 불만은 전처인 딸인 나에게 향했다.

하나님은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는지 나를 도와주셨다.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시고 길을 열어주셨다. 직장을 다니고 경력을 쌓고 일을 하고 좋은 남편과 평안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셨다. 만일 내가 내 상황을 비관하고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도움을 구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내 몸을 돌보기도 힘든 ADHD가 있는 머리로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왔을까? 배다른 동생들은 서울에서 좁은 집이라도 내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내가 겪은 극도의 가난과 비참함을 겪지 않았다. 나보다 형편이 훨씬 좋은데도 엄마가 있어서 말만 하면 필요가 채워졌는지 늘 불만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부모가 드리우는 그늘은 너무 깊었다. 나는 그들의 그늘에 잡아먹히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무게의 짐을 지고 다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와중에도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지금도 자꾸만 일어서는 나를 주저앉히면서 많은 짐을 화를 내면서 지우고 맡겨놓은 듯이 돈을 요구하는 계모나 그 자식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가 어떻게 그 함정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정서적 학대에서 슬픔을 가진 내 상태로 어떻게 5년, 7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도 못하고 버틸 수 있었을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던 것 같다.

지금 그 모든 상황에서 벗어난 나는 다시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날마다 소망을 담아서 시편 23편을 1000번을 향해 쓰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이전에 보살펴주신 하나님께 여전히 소망을 둔다. 내 소망은 남편이나 자식을 향한 소망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피해가 적다. 젊은 시절에 많은 방황을 하고 무능하면서도 자식을 넷이나 낳고 낳은 대로 학대를 하면서 많은 짐을 기대라는 이름으로 지웠던 아빠는 나에게 존재만으로 너무 큰 고통이었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내가 우스웠을 것이다. 나는 인간적인 계산이나 내 입장만 생각해서 따질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예수님도 없고 구원도 없고, 자신의 죄도 알지 못한다"라고 인내하고 기도하라고만 하시고 내 억울함이나 내 심경을 꺾으라고 계속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에게 죄를 짓거나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정서적으로 나보다 더 건강한 사람 사이에서 고통받으면서 일을 입맛대로 해주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우습게 여겼다. 하나님은 어떻게 보셨을까? 하나님의 계산은 사람들의 계산과 다를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너를 불러 왕으로 세웠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위와 선악에 그렇게 자신이 있을까? 나는 내 힘으로 결코 그 모든 일을 할 수 없다고 여겼고 그 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보기에는 너무 어두워서 길이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나를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 10)"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보셔서 선악 간에 갚으실 거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어리석고 온전하지 못한 가운데 애쓰고 수고했다는 것을 아시고 성전의 그릇 전부가 아니라 '얼마'를 넘기셨듯이 나의 잘못에는 '약간'의 벌을 주시고 기도하고 인내한 것에 크게 은혜를 부으셨으면 좋겠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Jiyeon Lee
Release dateJun 18, 2024
ISBN9798227116680
마흔에 읽는 다니엘서
Author

Jiyeon Lee

13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괴로워 죽을 뻔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프리하게 살고 있습니다. 누구의 간섭을 싫어하고 스스로 권위를 추구하기에 프리랜서가 매우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만족하고 살아갑니다.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많은 책을 읽습니다.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에 벗어났습니다. 자유로운 일상은 정신을 자유롭게 합니다. 이런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Read more from Jiyeon Lee

Related to 마흔에 읽는 다니엘서

Related ebooks

Related categories

Reviews for 마흔에 읽는 다니엘서

Rating: 0 out of 5 stars
0 ratings

0 ratings0 reviews

What did you think?

Tap to rate

Review must be at least 10 words

    Book preview

    마흔에 읽는 다니엘서 - Jiyeon Lee

    [다니엘] 계산이 정확하신 하나님

    다니엘서 1장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되받아 침략하거나 다른 나라에 침략 받은 억울함을 떠넘기려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도 않았다. 바보같이. 탄허 스님은 이런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일본은 지난 5백 년 동안 무려 49차례나 우리나라를 침략했다. 만약 임진왜란 때 천운이 우리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면 세력으로만 보자면 일본에 우리 땅을 열 번도 더 빼앗겼을 것이다. 결국 함경도까지 함락되면서도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국운 덕분이었다. 즉, 우리 선조들이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동양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며 남을 해칠 줄 모르고 살아온 것이 결국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동양 사상의 근본 원리인 인과법칙이자 인과응보이며 우주의 법칙이다.

    우리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당하고 보복하거나 악을 행하지 않았기에 당시에는 국운 덕분에 겨우 나라의 명맥을 지킬 정도의 운이었지만 이런 선이 쌓여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고 일본은 지은 죄가 많아서 가라앉을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긴 역사의 관점에서는 일견 이해가 간다.

    이스라엘이 나라가 없어지고 심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지은 죄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큰 죄는 므낫세가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 성소를 더럽힌 죄였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 신을 섬겼다. 그 왕들의 죄가 너무 커서 여호야김이 왕이 되었을 때는 죄를 지은 후손의 한 사람인 왕이 어떻게 잘한다고 해서 판이 바뀔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호야김이 잘 한 것도 없지만.

    그래서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넘기셨다고 한다. 여호야김은 왕이고 여호와의 전에서 사용하던 그릇 얼마는 여호야김와 비슷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의 그릇 얼마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갈 것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사람들과 나라의 죄를 정밀히 재어보시는지를 알 수 있다.

    제3의 눈, 하나님이 역사를 보시듯이 내 삶을 보는 제3의 눈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견딜 수 없었을 것 같다. 양치기를 하던 다윗을 불러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엄마도 없이 구박과 정서적인 학대를 받으며 자란 나를 부르셔서 환경을 바꾸시고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런 환경을 열어주신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사람들이 가난, 가난 말을 많이 하지만, 나는 부모님과 살 때 정말 극도의 가난을 느꼈다. 아빠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불안정한 사람이었고 계모도 철딱서니가 없고 허영이 가득한데, 남편이 폭력적이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돈이 없으니 그 불만은 전처인 딸인 나에게 향했다.

    하나님은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는지 나를 도와주셨다.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시고 길을 열어주셨다. 직장을 다니고 경력을 쌓고 일을 하고 좋은 남편과 평안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셨다. 만일 내가 내 상황을 비관하고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도움을 구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내 몸을 돌보기도 힘든 ADHD가 있는 머리로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왔을까? 배다른 동생들은 서울에서 좁은 집이라도 내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내가 겪은 극도의 가난과 비참함을 겪지 않았다. 나보다 형편이 훨씬 좋은데도 엄마가 있어서 말만 하면 필요가 채워졌는지 늘 불만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부모가 드리우는 그늘은 너무 깊었다. 나는 그들의 그늘에 잡아먹히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무게의 짐을 지고 다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와중에도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지금도 자꾸만 일어서는 나를 주저앉히면서 많은 짐을 화를 내면서 지우고 맡겨놓은 듯이 돈을 요구하는 계모나 그 자식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가 어떻게 그 함정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정서적 학대에서 슬픔을 가진 내 상태로 어떻게 5년, 7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도 못하고 버틸 수 있었을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던 것 같다.

    지금 그 모든 상황에서 벗어난 나는 다시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날마다 소망을 담아서 시편 23편을 1000번을 향해 쓰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이전에 보살펴주신 하나님께 여전히 소망을 둔다. 내 소망은 남편이나 자식을 향한 소망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피해가 적다. 젊은 시절에 많은 방황을 하고 무능하면서도 자식을 넷이나 낳고 낳은 대로 학대를 하면서 많은 짐을 기대라는 이름으로 지웠던 아빠는 나에게 존재만으로 너무 큰 고통이었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내가 우스웠을 것이다. 나는 인간적인 계산이나 내 입장만 생각해서 따질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예수님도 없고 구원도 없고, 자신의 죄도 알지 못한다라고 인내하고 기도하라고만 하시고 내 억울함이나 내 심경을 꺾으라고 계속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에게 죄를 짓거나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정서적으로 나보다 더 건강한 사람 사이에서 고통받으면서 일을 입맛대로 해주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우습게 여겼다. 하나님은 어떻게 보셨을까? 하나님의 계산은 사람들의 계산과 다를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너를 불러 왕으로 세웠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위와 선악에 그렇게 자신이 있을까? 나는 내 힘으로 결코 그 모든 일을 할 수 없다고 여겼고 그 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보기에는 너무 어두워서 길이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나를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 10)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보셔서 선악 간에 갚으실 거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어리석고 온전하지 못한 가운데 애쓰고 수고했다는 것을 아시고 성전의 그릇 전부가 아니라 '얼마'를 넘기셨듯이 나의 잘못에는 '약간'의 벌을 주시고 기도하고 인내한 것에 크게 은혜를 부으셨으면 좋겠다.

    [다니엘] 기대를 저버리고 저주를 받는 삶

    다니엘 1장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스피노자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이 드러났다. 네덜란드에서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었던 그는 유대인들의 공동체에서 다음 세대 랍비로 주목을 받았다. 공동체는 돈을 모아 '공공재'로서 스피노자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켰다. 그는 그 교육과 기대에 부응하면서 잘 자랐다. 유태인들은 어딜 가나 먹고사는 기술 하나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기술은 당시 최첨단을 걷는 렌즈 세공이었다.

    갑자기 그의 아버지와 형이 죽자, 그는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는 짐을 지게 되었다. 유대 공동체는 무슨 말이냐 우리가 공공재로서 키웠으므로 한 집안을 위해서 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을 수습하면서도 공동체의 차세대 리더로서 여러 역할을 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그는 그 두 가지 역할을 모두 내려놓고 철저히 개인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다. 누구나 집안이나 심지어 공동체가 기대를 걸었다면 그 기대를 꺾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경우, 집안에서 돈을 두고 소송이 벌어졌고 공동체는 그를 회유하고 협박하고 재판을 걸었다. 급기야 그의 뜻을 꺾을 수 없게 되자, 모든 공동체 사람들이 그를 밟고 지나가 회당에서 길고 긴 저주문을 공동으로 외면서 그를 공동체에서 파면했다. 유대인들은 사람의 영혼을 상징하는 촛불을 들고 그의 영혼이라 여기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촛불을 꺼서 그의 영혼이 죽었음을 확인했다.

    뛰어나다는 것은 이토록 피곤한 일이다. 느브갓네살이 유대왕 여호와김과 여호와의 전 그릇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유대인 중에 뛰어난 사람들을 색출해갔다. 조건은 까다로웠다.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워야 하고 지혜를 통달하고 학문에 익숙하며 자질이 좋아야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보면 빅토르 프랭클은 의사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쓸만한 체격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쓸만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애썼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자질이 좋으면 뽑혀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런 점을 봤을 때, 뛰어나게 태어난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진리다. 스피노자가 어려서부터 그토록 영특하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에게 돈을 모아서 교육을 시키겠다고 제안하지 않고 그는 개인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다니엘이 그토록 자질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환관이 되지 않고 이스라엘에 남아서 그냥 살았을 것이다. 빅토르 프랭클이 그토록 쓸모 있지 않았다면 의미를 그토록 찾고 죽은 아내를 끝없이 생각하는 정신 승리를 통해 지옥의 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토록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 없이 그냥 죽었을 것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노력을 하지도 않고 자신을 능가하는 뛰어난 자식이 태어나기를 바란다. 도둑놈의 심보가 아닐 수 없다. 아빠는 돌이 되기 전에 엄마와 이혼했다. 엄마는 나를 인수인계 없이 두고 갔고 배가 고프고 불편해서 우는 나를 아빠는 깃싸대기를 여러 번 날리는 식으로 조용히 시켰다고 열다섯 살인 나에게 배다른 남동생 앞에서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아빠는 내가 자라는 동안 재혼을 하고 나를 보러 몇 번 오지 않았고 나는 아빠가 먼 친척같이 여겨졌다.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내가 머리가 비상하다는 것을 안 아빠는, 나에게 니가 성공해서 자신의 한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냥 공부가 재미있어서 책 좀 보고 시험 좀 잘 본 것뿐인데 그렇게 큰 짐을 지울 줄 몰랐다. 10년 동안 연락이 없던 친엄마는 오빠로부터 내가 머리가 비상하다는 말을 듣고 오빠를 시켜 나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가 온 집안이 뒤집어지고 오빠가 너 엄마한테 가고 싶어?라고 묻는 말에 새엄마에게 맞고 사는 게 힘들어서 했다가 오빠가 일러바쳐서 새엄마에게 죽도록 보복을 당했다.

    내가 공부를 잘하고 착하다는 소문을 온 동네방네 내던 부모는 나를 자랑하면서 자신들이 부모 행세를 잘한다고 여겼다. 동장님은 새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여서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쟤가 착하고 공부를 잘하니 내가 키우겠다라고 했다. 이야, 어릴 때는

    Enjoying the preview?
    Page 1 of 1